나 자신에게 속다

잘 살아오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약속을 했고, 말로 거듭 확인했고, 지킬 것이라 예상하고 일을 진행했지만, 상대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일은 엉망이 되었다. 이제 엉망이 된 일을 수습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든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게 거듭 말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 속에서 얼마나 갑갑했을까. 지킬 수 없는 약속을 내게 거듭하면서 나를 속여서 일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원망스럽구나. 그런 생각은 지나갈 것이다. 내겐 수습해야 할 일들과 제고해야할 상대와의 관계만 남아 있다.  아니 더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 속고 말았던 어리숙한 나자신. 내가 속았기 때문에 상대는 나를 속일 수 있었다. 내가 거짓말에 속았기 때문에, 상대는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속지 않았다면 상대는 내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거짓말을 짓도록 만든 장본인은 바로 나인것이다. 상대의 편의를 봐주고 상대가 덜 고생하도록 내가 했던 일들은 역으로 상대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했고 거짓말하는 과정에서 갑갑함과 양심의 가책에서 괴로움을 겪게 했다. 상대를 돕고자 했지만 나는 상대를 구렁텅이속으로 넣고만 것이다. 이 일로 나 자신을 다시금 생각한다. 여기에 가르침이 있다. 배워야 한다. 어떤 면에서 그 상대는 내게 선생인지 모른다.  이런 일들은 전에도 있었고, 이 일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상대를 원망할 일은 아니다. 원망해서 무엇하겠는가. 다만, 상대도 이 일로부터 배우길 바란다. 배웠으면 좋겠다. 상대는 나를 속였지만, 나는 나 자신을 속였다. 가슴이 아프다. 착찹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