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February, 2008
용서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 의 ‘용서‘라는 글을 보다. 네이버 용어사전에 따르면 ‘용서는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이라 한다. 읽어보니 ‘용서하다’는 동사의 뜻에서 따와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용서를 구하다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에 대해서 인정하고 그로 인한 피해와 상처에 대해서 빌어 상대의 격한 감정을 풀라는 하소연일 것이다. 잘못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은 현실에서 비일비재한 일이겠지만, 그건 진정 용서를 구한다 볼 수 없다. 문제는 지은 죄와 잘못한 일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을 경우다. 또한 그 시시비비의 과정을 상대와 나 둘 중에 하나라도 견디지 못한다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로 나아간다. 그러면 결국 인간사, 인간관계…처세(處世)의 영역로 갈 수밖에 없어진다.
문득 과연 용서란 뭘까 싶다. 교회에 다니지 않지만, 나자렛 예수가 동족의 모함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당하는 과정에서 한 독백이라 전해오는 말이 기억난다. 아마도 신을 향해 말한 것라기 보다 자신을 향해 자신을 위해 한 말일 것이다. (가장 거대한 아스피린씨의 말대로 자신을 위한 ‘최선의 배려’ 일 것이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 누가복음 23장 34절
사무실에서 흡연
하루 시작은 새벽이다. 9개 일간지, 5개 경제지를 훝어 본다. 한페이지로 정리하여 보고한다. 이 새벽 일의 장점 중에 하나가 흡연이다. 사무실에서 누구 눈치보지 않고 담배를 피울 수 있다. 두시간 가량, 담배는 3~4가치 피운다. 피울 때, 담배맛을 느낄 겨를이 없다. 어떤 면에서 내가 피우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다. 다만 무언가 막혀서 정리를 해봐야 할때, 상황상황에 잠깐 한숨 돌릴때, 몸에서 니코틴을 원하고 있을 때 아무생각없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피운다.
담배는 백해무익 기호품이다. 그 기호품이 의존한다. 의존하는 것이 부재할 때 때때로 굴욕을 느낀다. 담배가 떨어져 피고 싶은데 더 이상 피울 수 없을 때 약간 안절부절하게 된다. 그땐 재털이에서 구겨진 담배를 해집고 그나마 장초를 찾아 담배불을 붙인다. 이땐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자유롭지 않은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흡연으로부터의 자유. 우스운 일이지만 자유는 별게 아니면서 별거인 그런 용어인것 같다.